정호용

1881–1955 (Age 74)
Gyeongnam, Korea

The Life of 정호용

When 정호용 was born in 1881, in Gyeongnam, Korea, his father, 정동득, was 40 and his mother, 이씨, was 46. He had at least 3 sons with 황씨. He died in 1955, at the age of 74.

Photos & Memories (0)

Photos & Memories

Do you know this person? Do you have a story about him you would like to share? Sign in or Create a FREE Account

Family Time Line

정호용
1881–1955
황씨
1886–1978
정재규
1911–
정재범
1918–
정재운
1921–

Spouse and Children

    Male1881–1955Male

    황씨

    Female1886–1978Female

children

(3)

    정재규

    Male1911–Male

    정재범

    Male1918–Male

    정재운

    Male1921–Male

Parents and Siblings

    정동득

    Male1841–1895Male

    이씨

    Female1835–1907Female

siblings

(1)

World Events (1)

1896

Age 15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낙동강을 비롯한 큰 강과 평야를 바탕으로 농경문화를 발달시켰다. 부족국가시대에 북부는 삼한 중 진한, 남부는 변한의 땅이었고 그 후 금관가야 등 6가야가 할거하여 발달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고대 가야 문화를 꽃피웠다. 단 가야의 영역은 일반적으로 낙동강을 경계로 삼는 것이 많으며, 동쪽으로는 아직도 한국사 떡밥 중의 떡밥인 백제의 전라도 진출과는 달리 신라가 빠르게 진출하였다. 지금도 김해시나 함안군 등지에서 가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김두관 후보가 당선되었을 때는 가야독립(신라에서 독립) 발언이 나오기도. 물론 경남 전 지역이 가야 권역이었던 건 아니고 양산시처럼 일찍이 신라였던 곳도 있지만. 통일신라 때는 9주 5소경 중 현 양산시를 중심으로 해서 동부 지역을 양주, 현 진주시를 중심으로 경상남도 서부 지역을 강주로 편성했다. 고려시대부터 지금의 경상북도 지방과 합쳐서 경상도가 되었다. 조선 중기에는 남북도가 아닌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좌도, 경상우도로 나누기도 했는데 이는 공식적인 행정구역은 아니었다. 구한말 1896년(고종 33년)에 지방제도 관제 등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경상도를 남북으로 나누어 지금의 경상남도가 되었다. 분리 후 도청이 진주에 설치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부산부로 옮겨졌다. 그 후 부산시가 1963년에 직할시로 승격해 경상남도에서 떨어져 나간 이후에도 20년간 도청은 부산 서구(현재의 동아대학교 박물관 건물)에 있다가 1983년 창원으로 이전하였다.

Name Meaning

We don’t have any information about this name.

Sources (0)

    Sources

    There are no historical documents attached to 정호용.

    Find more of your family story

    As a non-profit, we offer free help to anyone looking to learn the details of their family story.

    Create a free account to view more about your family.
    Create a free account
    Share this with your family and friends.